일단은 여기까지.

일상 2008/08/11 23:53

교육훈련 관계로 당분간 블로그를 동결합니다. 별일 없으면 다음 포스팅이 올라올 시간은 9월 둘째 주 정도일 것 같네요.
 
사실 이 블로그는 답답할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하고 소리나 지르려고 만들었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몇 달만에 수천 분이나 들러주시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조금 기쁘더군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 같은 환경에서 컴퓨터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기적 같은 이야기였지만, 기왕 시작한 이야기는 마무리 짓고 가고 싶어서 나름대로 발버둥을 쳐봤는데 지금 제 역량으론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 떡밥만 잔뜩 뿌려 놓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게 되어 그간 저질포스팅을 보러 와주신 여러분-혹은 봇들일지도 모르지만-께는 정말 감사하면서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쨌건 이번 훈련에 통과하든 못하든 가을부터는 제 시간이 조금이나마 보장될 것 같으니, 남겨진 이야기들은 그때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저놈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던 게 어디 한 두번이던가, 별로 믿음은 안 가실지 몰라도 그냥 믿어 보세요.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2008/08/11 23:53 2008/08/11 23:53

님은 먼 곳에

감상 2008/08/04 22:36

본지 이틀이 지났지만 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소화불량에 걸린 듯한 느낌을 안고 돌아와 이런저런 감상문들을 읽어보니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근데 씨발 그게 정말 그런 뜻이었어? 하는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뭐 어쨌든 내 돈 내고 본 건 아니니까 불만은 없지만, 대장님이 다음에 보고 싶어할 영화는 기왕이면 코미디였으면 좋겠다.

수애가 부른 <님은 먼 곳에>가 이틀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른다는 생각은 못 해봤는데, 미묘하게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는 목소리였던 걸까. OST에 반주 없이 목소리만 나온 트랙이 있으면 좋겠다.

2008/08/04 22:36 2008/08/04 22:36
0. 알라딘 사랑해 ㅠㅠ 아 이런 천하에 개꼴통들 같으니 ㅠㅠㅠㅠ
마케팅이라도 좋아 리브로 예스24 다 갖다버리고 앞으로는 너만 쓸께 ㅠㅠ

국방부 공식 불온서적 목록 중 읽은 걸 세어보니 다섯 권밖에 없다. 그리 길지도 않은 삶에 대한 후회로 가슴 한 켠이 묵직하게 아려 온다. 난 그동안 한 마리 어린 양처럼 너무나도 순하게만 살아왔구나. 박봉이나마 탈탈 털어서 남은 여름이라도 마구마구 불온해져야지.

그나저나 공구리는 비데 필요 없어 좋겠다.. 다들 저리 똥구멍을 못 빨아줘서 안달이니 원...


1. 이걸로 고기 먹는 스님은 막장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에라이, 부처님 보증도 있겠다, 앞으로 내 눈앞에서 고기에 입만 대는 중만 보여 보라 내 손으로 그냥 확...?

아니 잠깐 근데 이건 또 뭐여?

 

“산 것을 죽이는 일, 때리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 하는 일, 사기와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남의 아내와 가까이 하는 일, 이것이 비린내 나는 일이지 육식이 비린내 나는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며, 허무론을 가지고 바르지 못한 행을 하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 <숫타니파타>


 

“비구들이여,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를 위해 고의로 죽였다는 의심이 없다면, 즉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생선과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다.” -<율장>



뭐지 이건...?
아까는 고기 먹으면 나쁜 놈이라며? 귀신이라며?
고기 먹는 놈들은 자비심도 없어서 사람도 막 쳐죽일 거라며?
아니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라 서로 막 잡아 먹고도 남을 놈들이라며?
벼라별 무시무시한 말씀을 다 하시더니 갑자기 육식이 비린 것이 아니라고?
게다가 딱 비구들을 찍어서 아예 어떤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허락까지 하시네?

모르겠어...아니 명색이 사대성인 중 한 명인 양반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했을린 없고... 아, 혹시 두번째 나온 부처는 Buddha가 아니라 Butcher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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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역습!!! -ㅁ-!!!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뻘짓은 이 정도만. -_-;;

위에서 봤듯이, 1번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전마다 육식에 대한 의견이 분명하게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불교라고 해도 다 똑같은 불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아무리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대승불교 소승불교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사실 이 용어들도 좀 많이 문제가 있긴 한데, 지금은 고기가 급하니 우선 대소승으로 통칭을...). 그것도 못 들어봤다면 최소한 달라이라마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 이것도 못 들었으면 이번엔 그냥 가고 나중에 이름이나 들었을 때, 그 때 다시 와주길 바란다.

불교를 나누는 기준으로는 대충 대여섯가지 정도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1. 사상적으로 - 소승불교, 대승불교
2. 시대적으로 -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3. 지역적으로 - 남방불교, 북방불교

이런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면 된다.

Q : 아이씨.. 고기 먹는 스님 얘기 보려고 들어왔는데 뭔 놈의 설명이 이리 많아...?
A : 나도 길게 설명하고 싶진 않은데, 머리 꼬리 다 자르고 대차게 나가다 보면 "남침은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었다" 가지고 꼬투리잡는 조선일보식 난장을 벌인다는 오해를 받을 것 같아 없는 머리 짜내면서 잘 시간 쪼개 쓰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라.

그리고 저 분류를 거칠게 다시 "육식허용 여부"로 나누면 대충 이렇게 나눌 수 있다.

허용 : 소승 - 초기, 부파 - 남방
금지 : 대승 - 대승 - 북방

뭔가 개념이 많이 복잡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인 불타 석가모니의 입멸 후 백년 후까지는 불교교단이 하나로 이어져 내려 올 수 있었다. 석가모니는 가고 없지만, 여기저기에 그의 흔적들과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 있었기에 원형 그대로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의 불교를 초기불교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는 법. 백년이 지나자 아무래도 이건 좀... 싶은 문제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열 가지 문제를 두고 대판지게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한 사람들은 기존의 교단과 별개의 파를 세워 떨어져 나오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불교 교단은 다시 200여년 동안 20여개의 부파로 나뉘니 이를 부파불교라 부른다.

그리고 불타가 입멸한지 오백여년이 지나자 계율과 교리에 대한 해석은 좀 감당이 힘들 정도로 형식화되어 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 출가자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인을 보고서도 구해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출가자는 여인의 신체를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계율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현실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마구마구 생겨난다.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모양이었을까? 비록 우린 늦게 태어났지만 다시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요? 그러나 부파불교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럼, 당연하지. 이 세상의 부처님은 오직 석가모니 뿐! 그 분 말고는 아무도 부처가 될 수 없으니 우린 다만 그 분의 자취를 따라가 아라한이 되려 노력할 뿐이다.

아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박인환, < 세월이 가면>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부처님 브로마이드도 사다가 벽에 걸어 놓고, 부처님 투어에 가서 사진도 왕창 왕창 찍어 오고, 부처님 거리에 가서 발도장 손도장도 구경해보지만 마음 속 빈 구멍은 점점 커져갈 뿐. 벌써 오백년이나  전의 흔적들인데 실감이 날리가 없다. 이대로는 뭔가 부족하다. 이런건 나의 불교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까짓거, 불교를 새로 만들지 뭐. 그래서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경전이고 교리고 교단이고 뭐고 전부 리어레인지된 새로운 불교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그들이 만든 새로운 불교에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스스로 "많은 사람들을 큰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레(大乘)"라는 뜻의 대승불교라 부르면서 기존의 불교를 "소수만 편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레"라는 의미를 담아 소승불교라고 비하해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비교적 철학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던 불교는 본격적으로 종교색을 짙게 머금게 된다. "법을 설하는 자"이자 "깨달은 인간"으로서의 부처만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목표"로서의 부처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경전마다 육식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이유가 바로 이거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간"이었던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관념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의 부처님", 또는 후대에 태어나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의 가르침을 (고의적으로)구분하지 않고 한데 묶어 "부처님 말씀"이라 부르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to be continued...-_-;;)


차회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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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가 없잖아...
2008/08/04 00:28 2008/08/04 00:28
1.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물체를 든다.

2. 그 물체로 머리를 내리친다.

3. 아직도 그런 결심이 드는가?
  Yes    2로
  No     4로  

4. 다음에 또 그런 결심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
2008/08/01 22:39 2008/08/01 22:39

ㅠㅠ

잡상 2008/07/30 22:36

월초만해도 폭풍간지 시국법회를 보면서 불교도 멋있게 끗발 세우는 법을 배워가는구나, 하고 뿌듯해 했는데.. 이건 뭐... 정말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ㅠㅠ

무려 총무원장 차량이 검문당한 건 어청수가 작정하고 엿맥인 거니까 어쩔 수 없이 당한 거라 치자. 근데 불교계가 불끈해서 내놓은 후속조치라는 게 참 사람 뒷골 땡기게 만드는 것뿐이다.


문1. 항의하려면 쪽문으로 들어오라는 잉간들이 과연 산문폐쇄를 한다고 무서워할까?

문2. 아니 그보다 저 잉간들이 산문이 뭔지 알긴 알까?

문3. 불교단체가 항의의 뜻으로 삭발을 하면 비장해보일까 웃겨 보일까?

문4. 명색이 한국 최대 불교종단 관련기사인데, 포털 헤드라인에 과연 얼마나 걸려 있었을까?



지금 황우석이나 주워올 때가 아니란 말이다 흑흑 ㅠㅠ



덧 - 스고막은 주말쯤에나 손바닥만큼 올라갈 것 같습니다 -_-;

2008/07/30 22:36 2008/07/3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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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침에 구글 rss 버튼을 달려다가 스킨을 통째로 날려 먹어서(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면 지는 겁니다 -_-;;) 이참에 새 스킨으로 갈아 탔습니다. 남자가 스킨을 바꾸는 일이 여자가 머리를 자르는 일만큼의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딱히 굳은 각오 같은 걸 드러내려 그런 건 아니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라며...-_-;;


1. 뭐 다들 알다시피 종교적 믿음은 왕왕 상식이나 지식과는 따로 놀게 되는데, 이는 종교적 믿음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현과 입증을 통해 '틀린 거' 빼고 남은 것만 믿자는 과학적 믿음과는 달리, 종교적 믿음은 먼저 '옳아야 하는 걸' 정해놓은 다음 나머지를 그 틀에 다 끼워맞추는 식으로 형성된다. 때문에 과학적 믿음은 여지껏 다 맞다가 한 번이라도 틀리면 나가리되버리지만 종교적 믿음은 어떤 반증과 모순이 발견되도 부서지지 않는다. 아니, 부서질 수가 없다. 여기 대해서는 칼 세이건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멋진 예시를 들어 놨으니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불을 뿜는 용이 내 차고에 살고 있다."
 내가 진지하게 그런 주장을 한다고 가정해보자(나는 심리학자 리처드 프랭클린의 집단 치료법을 따르고 있다). 물론 여러분은 직접 살펴보고 싶을 것이다. 용에 관해서는 수세기동안 수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제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대단한 기회가 아닌가!

 "한 번 보여주세요" 라고 여러분은 말한다.
 나는 여러분을 차고로 안내한다. 안을 들여다보니 사다리와 빈 페인트통과 오래 된 세발자전거가 보인다. 그러나 용은 보이지 않는다.

 "용은 어디 있나요?" 여러분이 묻는다.
 "오, 용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는 막연히 손을 흔들면서 대답한다.
 "이 용은 보이지 않는 용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군요."
 여러분은 차고 마룻바닥에 밀가루를 뿌려서 용의 발자국을 포착하자고 제안한다.
 
 "좋은 생각이네요." 내가 말한다.
 "그런데 이 용은 공중에 떠다녀요."
 그러면 여러분은 적외선 감지기를 사용해서 보이지 않는 불을 탐지하려고 들 것이다.

 "좋은 생각이지만 보이지 않는 불은 열이 없어요."
 여러분은 용에게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서 보이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좋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이 용은 형체가 없어서 페인트도 묻지 않아요."
 기타등등. 나는 여러분이 제안하는 모든 물리적 검사에 대하여 왜 그런 것들이 효과가 없는지를 특별한 설명을 제시하여 응수한다.

(중략)
 일이 다른 식으로 진행된다고 상상해보자. 용은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이 지켜보는 동안 밀가루를 뿌리면 발자국이 만들어진다. 적외선 탐지기는 떨어진 비늘을 잡아낸다. 스프레이 페인트는 공중에 아래위로 올록볼록한 벼슬을 눈앞에 드러나게 한다. 용의 존재-보이지 않는 용은 말할 것도 없이-에 관해 얼마나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에 상관없이, 여러분은 이제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그리고 잠정적으로 그것이 보이지 않는 불을 뿜는 용과 일치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중략) 다행히도 이제 밀가루 속에서 공룡 크기의 발자국이 보고된다. 그러나 그 발자국은 회의론자가 보고 있을 때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밀 조사 결과 발자국이 가짜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대안적인 설명이 등장한다. 또 다른 용 열광자가 불에 탄 손가락을 내밀며 용이 뿜어낸 불길이 드물게 물리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용의 숨결 이외에도 손가락을 태우는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 증거- 용 지지자들이 그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는 결정적인 증거와는 거리가 있다.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中


이걸 부숴버리는 방법은 그런 믿음이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까발려 놓는 것 뿐인데, 그건 애초부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진지하게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위와 같은 일을 겪게 될테니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복장이 터져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누가 뭐라고 찧고 까불든 방긋방긋 웃으며 "그건 아직 당신이 잘 몰라서  그래요. 신의 일은 인간의 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이랍니다" 이런 식으로 나올 테니까.
원래 그렇다는데 어쩌라고... 아뭏든 이렇게 맞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믿어주긴 뭔가 찜찜한 이야기들을 종교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교리라고 부르고, 이걸 한 데 모아 놓은 책을 경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교리와 경전은 차륜전을 펼치며 사이좋게 서로의 권위를 세워준다.

1. 경전에 나와 있는 말은 모두 진리이다.
2. 왜냐면 경전에 나와 있으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기분탓입니다 -_-;; 이 얘긴 이따가 다시...).

이런 맥락에서 "경전에 부처님이 고기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라는 1번의 주장이 육식금지의 가장 강력한 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불교를 세운 양반이 먹지 말라카는데 설마 허튼 소리 했겠어? 하물며 그 말씀이 적힌 책들이 초희귀 한정판본이라 51구역의 창고 구석이나 용궁의 보물상자에 딱 한 권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서점이고 도서관이고 심지어는 인터넷에까지 쫙 깔려 있는 마당이니, 니 말만 듣고 내가 어떻게 믿느냐는 군소리가 나올 여지까지도 없어져버린다. 훌륭하다.
그럼 이참에 확인해보자. 경전에서는 불자의 육식에 대해 대체 뭐라고 하고 있을까?


 “지혜를 완성한 보살은 자비를 근본으로 보살도를 실천함에 있어서 그 실천의 대상을

 일체중생으로 하기 때문에 일체의 식육을 금한다.” - <범망경>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설사 마음이 열리어 삼매를 얻은 듯 하더라도 모두 흉악한 귀신들인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생사의 고통바다에 빠져서 서로 죽이고 서로 잡아먹기를 그치지 아니할 것이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삼계를 뛰어넘을 것인가."  - <오분율>

 “살생을 하고 육식을 먹는 것은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므로 보살도를 닦는 수행자는  반드시 금해야 한다" - <대승열반경>



으윽, 이럴 수가. 코멘트를 달고 말고 할 여지도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죄송합니다 역시 불교에서는 고기를 먹으면 안되는가봐요 ㅠㅠ


                                  (...정말 이대로 끝내는 건 아닙니다...-_-;;...)
2008/07/27 23:41 2008/07/27 23:41

고민 끝.

일상 2008/07/26 16:48

0. 이제 그만, 고민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블로그를 동결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랄까 지금도 별로 동결상태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서도...;; 스고막은 쥐꼬리만한 내용에 굼벵이같은 속도로나마 계속 올라갑니다 -_-;)

1.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건강조차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대장님의 지원을 받아 한 번 진료에 칠만원 정도 받는 병원에서 일주일간 치료를 받았는데, 한 번 진료에 만원 정도 받는 병원에서 한 달 내내 치료 받은 것보다 회복속도가 빠르다. 때마침 와준 장마비 덕분에 체력도 무서운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한때는 시험 통과는 고사하고 이러다 평생 불구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이대로라면 이주일 내에 완치가 가능할 듯 하다.
기분 좋은 날이다.

2. 조계종, 요새 어째 잘 나간다 싶더니...

황우석 “연구재개 위해 도와달라”

삽질을 할 시점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런 블록버스터급 대형사고를 칠 줄이야. 번듯한 사람 하나 만들어 한 풀어보려는 기분은 알겠는데 대체, 왜, 하필, 이런 검증된 쓰레기를 다시 파오느냐고???
2008/07/26 16:48 2008/07/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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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12

산란함이 없으면 일상 생활도 없습니다. 세간은 산란함 그 자체입니다. 산 속에 들어가서 좌선하는 게 산란함을 피하는 게 아니예요. 산란함이 없으면 삼매도 불가능합니다. 고요히 앉아서 좌선만 하는 게 그런 게 아니예요. 이건 불교가 아닙니다. 실제 일상은 이렇지 않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이 산란합니다. 이제를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세간살이를 말하는 겁니다. 세간 없는 출세간은 없어요.
그래야 뭐가 나오겠습니까. 자비로운 행위를 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 속에서, 함께, 향해서 하는 거 아니야. 대승은 세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아예 생각조차 안하고 주는 무주처열반을 왜 대승 들어 처음 말했겠어. 대승 전에는 유여 무여 뿐이었다고. 무주처는 세간살이를 버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산 속에서 고요히 좌선만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만행을 하는 게 그런 거예요. 수행을 한 다음에도 세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5식신, 일상생활. 여기서 삼매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주좌와 다 선이 되고 삼매가 되지만 정말 삼매다운 삼매를 하려면 좌선을 하라는 겁니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곳에서 좌선을 해야 올바르게 삼매가 된다고. 하지만 어디 일상이 그러냐고. 초반에는 보고 듣기에 휘둘린다고. 좌선 하는 데에 걸어가고, 끝나면 돌아오고, 밥 먹을 때 보고 듣고. 모두가 산란한 행위라고. 24시간 사마디는 안 돼. 불교에서는 아주 좋지 않은 이미지라고. 따로 따로 떨어진 게. 외적 자극에 방어할 길은 없어. 외적 사마디는 항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내적 충동, 마음을 다스리는 건 가능하지만 외적 자극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사띠 수행으로. 아무리 사띠 해도 멸진정에 들지 않는 한 안된다고. 외적 자극에는. 그런데 불교는 이거까지 다 다루고 있다고. 산란함을 배척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출세간주의지. 올바르게 자기가 서야 힘을 키워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거든. 뿌리가 없어 위태로운, 자기가 아닌 신에 의존하는 기독교의 사랑과 다른 점이 이거야.
삼매에 들면 너무 편하고 좋아. 사람 만나는 것도 시내 나오는 것도 싫어진다고. 그만큼 삼매의 맛을 즐겨, 탐이지. 색계무색계에도 탐이 들어가, 그래서 윤회를 하게 돼. 멸진정도 윤회야. 멸진정은 해탈도 열반도 아니라고. 다른 선정과는 달리 현행하지 않지만 말이야.

가라앉은 게 혼침. 도거는 들뜬 거. 대체로 학생은 도거야. 공부하니까. 책을 드는 순간 산란해지고 도거가 된다고. 사교입선은 일견 맞지만, 좌선을 하지 않을 때는 항상 책을 읽어야 균형이 맞는다구. 들뜰 때는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가 들지. 그래서 도회라고 해. 도거와 후회를 같이 묶어서. 후회는 좋은 게 아니야. 참회는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거지. 그런데 참회한 다음에, 정리한 다음에 또 떠올리면 그건 참회가 아니야. 번뇌가 있는 거라고. 선법이 아니야. 앞으로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지, 이건 선법이지만 이게 자꾸 떠오르면 불선법이 되는 거라구.



P교수는 이른바 인기교수는 아니었다. 그는 친하게 지내는 학생이라고 점수를 특별히 잘 주지도 않았고, 한 시간 내내 농담이나 하다가 나가버리지도 않았으며, 아무리 어눌하고 서툴러도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의 말에 더 관심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싼 학비와 바꾸어 모아 놓은 강의록들 중, 수십번을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의 수업뿐이다.

2008/07/25 21:10 2008/07/25 21:10
사실 고기를 먹는 중이 땡중이란 건 "일반적인 생각" 정도가 아니라 그냥 상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죽하면 속담에도 쌔고 쌘 게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 빈대가 안남아난다", "어린 중 젓국 먹이듯", "중 개고기 사 먹듯", "중이 마빡 씻은 물(이 속담은 나도 이번에 처음 봤다. 미적지근하고 퍽퍽한 고깃국을 말한다고 -_-;;)" 등등 고기 먹는 스님을 소재로 삼은 것들일 정도니. 그런데, 이렇게 "원래 안 먹는 거니까" 에서 "근데 왜 안 먹는데?" 라고 한발짝만 더 나가 보면 나오는 얘기들이 조금씩 틀려지게 된다. 기준을 불교 외적으로 잡느냐 내적으로 잡느냐 등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크게 나누면 뭐 대충 이 정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 부처님이 원래 먹지 말랬다. 이거 경전에도 나온 얘기다.
2. 사람이 다시 태어난 게 동물이라더라. 그러니까 짐승 고기를 먹는 놈은 사람 먹는 거나 마찬가지다.
3. 고기를 먹으려면 동물을 죽여야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고기를 먹는 건 생명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4. 동물이 죽을 때 얼마나 억울하겠냐. 그래서 고기를 먹으면 그 안에 있는 한이 몸에 쌓여서 먹은 놈 성질이 드러워진다.


아래에서는 이중 1번을 중점으로, 3, 4번은 곁다리로 살피면서 지나갈 예정이다. 2번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닌데, 첫 시간에 밝혔듯이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을 시작하면 대개 길고 짜증나고 무의미한 난장판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바늘 끝 위에 몇 명의 천사가 올라갈 수 있는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셀 수 없는 스콜라 철학자들이 중세기 내내 맞장을 떴던 사례를 상기해보면 -_-;;) 그냥 못본 체 하고 지나가도록 하자. 가뜩이나 관리도 안 되는 블로그인데 떡밥까지 무성하면 도무지 버텨낼 재간이 없다.
(Coming soon...Maybe...-_-;;;;)




사흘에 걸친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쥔장입니다. -_-;; 그저 제가 죽일 놈입지요, 예.
이제 무슨 말을 해도 비겁한 변명밖에 안 될 것 같아 변명이고 해명이고 사과문이고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올려져 있으면 올려 놓았는 갑다, 없으면 또 무슨 일이라도 났는 갑다하고 생각해 주세요. -_-;;
 
그리고 혹시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기> 대회나 <천하제일 죽쒀서 개주기 무도회> 같은 행사에 대해 아시는 분들 제보 바랍니다. 지금의 저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_-;;
2008/07/23 00:01 2008/07/23 00:01

-_-;;

일상 2008/07/20 19:36

먼저 본의 아니게 여러 방문자 분들을 낚은 데 대하여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_-;;

아니 저기 그게... 제가 일부러 낚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_-;;

그냥 자겠다고 포스팅해놓고 나서, 제출 직전의 보고서를 보니 왜 이렇게 맘이 안드는 구석이 많은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다가 결국 거의 보고서를 새로 써서 올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다음날 밤이 되어 있더군요. -_-;;;

아니 그래도 내가 오늘 쓰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뭐라도 쓰긴 써야지, 하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눈이 너무 뻑뻑하더라구요, 눈을 한 오분만 감았다 뜨면 부드러워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딱 오분만 눈을 감았다 뜨니까 역시 눈이 한결 편해지더라구요. 상식적으로다가 생각해보더라도 오분만 감았어도 이 정도로 편한데 십분을 감으면 두 배는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딱 십분만 더...(이하 생략) 이 짓을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네 시더라구요. 결국 글은 글대로 못 쓰고 잠은 잠대로 설치고.. -_-;;

새벽 네 시에 혼자 차 끓여 마시면서 그래도 아직 이십대인데 체력이 왜 요모양 요꼴로 바닥을 치고 있나 곰곰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요 일주일 동안 잔 시간을 다 합해도 스무 시간이 좀 넘을 뿐이라는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더군요. 가만히 있어도 팔다리가 달달 떨리고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며 오른쪽 얼굴이 실룩거리는 원인도 왠지 이것 때문인 것도 같고...
원인을 찾은 기념으로 병원 가서 링겔 한 통 맞으면서 아무리 젊어도 몸 함부로 굴리면 못 쓴다고 욕도 좀 먹고 왔습니다. -_-;; 하나뿐인 몸, 소중히 다뤄주세요들.

그래서.. 저질 포스트를 기다려 오신 여러분들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이만 자겠습니다. -_-;;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_-;;

2008/07/20 19:36 2008/07/20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