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알라딘 사랑해 ㅠㅠ 아 이런 천하에 개꼴통들 같으니 ㅠㅠㅠㅠ
마케팅이라도 좋아 리브로 예스24 다 갖다버리고 앞으로는 너만 쓸께 ㅠㅠ
국방부 공식 불온서적 목록 중 읽은 걸 세어보니 다섯 권밖에 없다. 그리 길지도 않은 삶에 대한 후회로 가슴 한 켠이 묵직하게 아려 온다. 난 그동안 한 마리 어린 양처럼 너무나도 순하게만 살아왔구나. 박봉이나마 탈탈 털어서 남은 여름이라도 마구마구 불온해져야지.
그나저나 공구리는 비데 필요 없어 좋겠다.. 다들 저리 똥구멍을 못 빨아줘서 안달이니 원...
1. 이걸로 고기 먹는 스님은 막장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에라이, 부처님 보증도 있겠다, 앞으로 내 눈앞에서 고기에 입만 대는 중만 보여 보라 내 손으로 그냥 확...?
아니 잠깐 근데 이건 또 뭐여?
“산 것을 죽이는 일, 때리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 하는 일, 사기와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남의 아내와 가까이 하는 일, 이것이 비린내 나는 일이지 육식이 비린내 나는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며, 허무론을 가지고 바르지 못한 행을 하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 <숫타니파타>
“비구들이여,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를 위해 고의로 죽였다는 의심이 없다면, 즉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생선과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다.” -<율장>
뭐지 이건...?
아까는 고기 먹으면 나쁜 놈이라며? 귀신이라며?
고기 먹는 놈들은 자비심도 없어서 사람도 막 쳐죽일 거라며?
아니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라 서로 막 잡아 먹고도 남을 놈들이라며?
벼라별 무시무시한 말씀을 다 하시더니 갑자기 육식이 비린 것이 아니라고?
게다가 딱 비구들을 찍어서 아예 어떤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허락까지 하시네?
모르겠어...아니 명색이 사대성인 중 한 명인 양반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했을린 없고... 아, 혹시 두번째 나온 부처는 Buddha가 아니라 Butcher인걸까?

부처의 역습!!! -ㅁ-!!!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뻘짓은 이 정도만. -_-;;
위에서 봤듯이, 1번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전마다 육식에 대한 의견이 분명하게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불교라고 해도 다 똑같은 불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아무리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대승불교 소승불교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사실 이 용어들도 좀 많이 문제가 있긴 한데, 지금은 고기가 급하니 우선 대소승으로 통칭을...). 그것도 못 들어봤다면 최소한 달라이라마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 이것도 못 들었으면 이번엔 그냥 가고 나중에 이름이나 들었을 때, 그 때 다시 와주길 바란다.
불교를 나누는 기준으로는 대충 대여섯가지 정도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1. 사상적으로 - 소승불교, 대승불교
2. 시대적으로 -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3. 지역적으로 - 남방불교, 북방불교
이런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면 된다.
Q : 아이씨.. 고기 먹는 스님 얘기 보려고 들어왔는데 뭔 놈의 설명이 이리 많아...?
A : 나도 길게 설명하고 싶진 않은데, 머리 꼬리 다 자르고 대차게 나가다 보면 "남침은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었다" 가지고 꼬투리잡는 조선일보식 난장을 벌인다는 오해를 받을 것 같아 없는 머리 짜내면서 잘 시간 쪼개 쓰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라.
그리고 저 분류를 거칠게 다시 "육식허용 여부"로 나누면 대충 이렇게 나눌 수 있다.
허용 : 소승 - 초기, 부파 - 남방
금지 : 대승 - 대승 - 북방
뭔가 개념이 많이 복잡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인 불타 석가모니의 입멸 후 백년 후까지는 불교교단이 하나로 이어져 내려 올 수 있었다. 석가모니는 가고 없지만, 여기저기에 그의 흔적들과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 있었기에 원형 그대로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의 불교를
초기불교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는 법. 백년이 지나자 아무래도 이건 좀... 싶은 문제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열 가지 문제를 두고 대판지게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한 사람들은 기존의 교단과 별개의 파를 세워 떨어져 나오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불교 교단은 다시 200여년 동안 20여개의 부파로 나뉘니 이를
부파불교라 부른다.
그리고 불타가 입멸한지 오백여년이 지나자 계율과 교리에 대한 해석은 좀 감당이 힘들 정도로 형식화되어 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 출가자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인을 보고서도 구해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출가자는 여인의 신체를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계율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현실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마구마구 생겨난다.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모양이었을까? 비록 우린 늦게 태어났지만 다시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요? 그러나 부파불교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럼, 당연하지. 이 세상의 부처님은 오직 석가모니 뿐! 그 분 말고는 아무도 부처가 될 수 없으니 우린 다만 그 분의 자취를 따라가 아라한이 되려 노력할 뿐이다.아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박인환, < 세월이 가면>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부처님 브로마이드도 사다가 벽에 걸어 놓고, 부처님 투어에 가서 사진도 왕창 왕창 찍어 오고, 부처님 거리에 가서 발도장 손도장도 구경해보지만 마음 속 빈 구멍은 점점 커져갈 뿐. 벌써 오백년이나 전의 흔적들인데 실감이 날리가 없다. 이대로는 뭔가 부족하다. 이런건 나의 불교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까짓거, 불교를 새로 만들지 뭐. 그래서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경전이고 교리고 교단이고 뭐고 전부 리어레인지된 새로운 불교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그들이 만든 새로운 불교에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스스로 "많은 사람들을 큰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레(大乘)"라는 뜻의
대승불교라 부르면서 기존의 불교를 "소수만 편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레"라는 의미를 담아
소승불교라고 비하해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비교적 철학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던 불교는 본격적으로 종교색을 짙게 머금게 된다. "법을 설하는 자"이자 "깨달은 인간"으로서의 부처만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목표"로서의 부처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경전마다 육식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이유가 바로 이거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간"이었던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관념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의 부처님", 또는 후대에 태어나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의 가르침을 (고의적으로)구분하지 않고 한데 묶어 "부처님 말씀"이라 부르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to be continued...-_-;;)
차회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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