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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4/24 P교수님의 강의록

2007. 6. 12

산란함이 없으면 일상 생활도 없습니다. 세간은 산란함 그 자체입니다. 산 속에 들어가서 좌선하는 게 산란함을 피하는 게 아니예요. 산란함이 없으면 삼매도 불가능합니다. 고요히 앉아서 좌선만 하는 게 그런 게 아니예요. 이건 불교가 아닙니다. 실제 일상은 이렇지 않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이 산란합니다. 이제를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세간살이를 말하는 겁니다. 세간 없는 출세간은 없어요.
그래야 뭐가 나오겠습니까. 자비로운 행위를 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 속에서, 함께, 향해서 하는 거 아니야. 대승은 세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아예 생각조차 안하고 주는 무주처열반을 왜 대승 들어 처음 말했겠어. 대승 전에는 유여 무여 뿐이었다고. 무주처는 세간살이를 버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산 속에서 고요히 좌선만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만행을 하는 게 그런 거예요. 수행을 한 다음에도 세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5식신, 일상생활. 여기서 삼매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주좌와 다 선이 되고 삼매가 되지만 정말 삼매다운 삼매를 하려면 좌선을 하라는 겁니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곳에서 좌선을 해야 올바르게 삼매가 된다고. 하지만 어디 일상이 그러냐고. 초반에는 보고 듣기에 휘둘린다고. 좌선 하는 데에 걸어가고, 끝나면 돌아오고, 밥 먹을 때 보고 듣고. 모두가 산란한 행위라고. 24시간 사마디는 안 돼. 불교에서는 아주 좋지 않은 이미지라고. 따로 따로 떨어진 게. 외적 자극에 방어할 길은 없어. 외적 사마디는 항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내적 충동, 마음을 다스리는 건 가능하지만 외적 자극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사띠 수행으로. 아무리 사띠 해도 멸진정에 들지 않는 한 안된다고. 외적 자극에는. 그런데 불교는 이거까지 다 다루고 있다고. 산란함을 배척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출세간주의지. 올바르게 자기가 서야 힘을 키워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거든. 뿌리가 없어 위태로운, 자기가 아닌 신에 의존하는 기독교의 사랑과 다른 점이 이거야.
삼매에 들면 너무 편하고 좋아. 사람 만나는 것도 시내 나오는 것도 싫어진다고. 그만큼 삼매의 맛을 즐겨, 탐이지. 색계무색계에도 탐이 들어가, 그래서 윤회를 하게 돼. 멸진정도 윤회야. 멸진정은 해탈도 열반도 아니라고. 다른 선정과는 달리 현행하지 않지만 말이야.

가라앉은 게 혼침. 도거는 들뜬 거. 대체로 학생은 도거야. 공부하니까. 책을 드는 순간 산란해지고 도거가 된다고. 사교입선은 일견 맞지만, 좌선을 하지 않을 때는 항상 책을 읽어야 균형이 맞는다구. 들뜰 때는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가 들지. 그래서 도회라고 해. 도거와 후회를 같이 묶어서. 후회는 좋은 게 아니야. 참회는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거지. 그런데 참회한 다음에, 정리한 다음에 또 떠올리면 그건 참회가 아니야. 번뇌가 있는 거라고. 선법이 아니야. 앞으로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지, 이건 선법이지만 이게 자꾸 떠오르면 불선법이 되는 거라구.



P교수는 이른바 인기교수는 아니었다. 그는 친하게 지내는 학생이라고 점수를 특별히 잘 주지도 않았고, 한 시간 내내 농담이나 하다가 나가버리지도 않았으며, 아무리 어눌하고 서툴러도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의 말에 더 관심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싼 학비와 바꾸어 모아 놓은 강의록들 중, 수십번을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의 수업뿐이다.

2008/07/25 21:10 2008/07/25 21:10

P교수님의 강의록

감상 2008/04/24 21:15

2007. 6. 5

자성은 쉽게 이해시키려고 만든 이야기지, 엄밀하게 그게 아니라고. <중론>에서 "범부는 자성이 없다" 처럼 주장해.
"자성이 있지 않으니 없다", 이게 <중론>의 공성이다. 이걸 나쁘게 취해서 아무것도 없다고 해석하는 게 악취공이라고. <반야경>에서는 이걸 경계했지.

 탐착이든 번뇌든 심해지면 저절로 괴로워지는 거야. 좋아하는 여자 앞에 서면 자기 기대대로 그 사람을 생각하지. 그러나 그렇지 않아. 때문에 괴로워지는 거고. <반야경>에서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고 주고 받을 물건도 없다는 거야. 그런데 여기서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아니지. 내가 뭘 주고 잊어버렸어. 그런데 이게 내가 사라지는 거고, 줬다는 사실도 사라지는 건가? 그렇지 않아. 그런 게 존재하지만, 준다는 관념이 없다는 거라구, 그거야.


 줄 때 머뭇거려, 주고 나서 섭섭해 해. 이건 주는 게 아니란 얘기야. 그런 의미에서 있지 않다, 없다는 거야. 이걸 인식론, 유식무경으로 확대시켜 가는 거야. 그래서 있지 않다는 것을 없다는 거야. 없다 하면 뭐가 들어가? 출세간에 들어가지? 그래서 없다는 게 있다는 거야.


2007. 6. 12
 

대승의 사유와 소승 독각승의 사유는 자비의 문제에서 매우 다르다고. 대승에서 왜 무주처열반을 말해? 생사에도, 열반에도 매이지 않은 무주처열반. 왜 이러겠어? 자비로운 활동을 하니까. 미워하는 사람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지? 그래서 세상을 떠난다. 미움을 푸는 건. 이게 열반과 관계있어. 대승은 아예 미워하지 않아. 자비는 단순해. 안 만나면 돼.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된다고. 하지만 만나면 또 미워져. 해결이 안 된다구.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이 있어도 그 앞에 안 서겠다구. 이 욕망을 해결하기 전에는.

미워하는 사람은 둘이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지만. 이게 세속제와 승의제야.

2008/04/24 21:15 2008/04/24 21:15